#. 지강헌 사건 무엇?
지강헌 사건은
88서울올림픽이 폐막된 지 6일 후인
1988년 10월 8일 대낮에 호송 중이던 미결수
12명이 탈주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.
‘유전무죄 무전유죄’라는 유명한 말을 남긴
지강헌 일당 탈주 사건입니다.
어떻게 된 사건 일까요?
이감을 위해 서울 영등포교도소에서
출발한 호송버스를 타고 가던 미결수들은 교도관들을
위협해 포승줄로 묶고 탈주했습니다.
버스 안에는 25명의 미결수가 타고 있었지만
13명은 달아나지 않았다고 합니다.
5명은 하루도 안 돼 검거됐지만 지강헌 등 7명은 이후
8일 동안 서울 시내에서 강도짓을 하고 가정집에 침입,
인질극을 벌여 시민들을 공포에 떨게 했습니다.
클릭하시면 원본 보기가 가능합니다.
마지막까지 붙잡히지 않은 지강헌, 안광술, 한의철, 강영일 등
4명이 5차 인질극을 벌인 곳은 서대문구
북가좌동 고모씨 집이었습니다.
탈주범들이 집 안에 있던 양주를 마신 뒤 잠이 들자 고씨는
새벽에 집 밖으로 나가 경찰에 신고했습니다.
경찰 1000여명이 고씨 집을 포위했고 날은 밝아 오고 있었습니다.
지강헌의 가족 등이 찾아와 자수하라고 애원했습니다.
시간은 낮 12시가 넘어가고 있었고 지는
강영일(당시 21세)에게 자수하라고 했으나
강은 밖으로 나갔다가 다시 들어왔다고 합니다.
지는 “자수하러 간 놈이 왜 다시 들어왔느냐”며
마당에 총을 쐈고 안과 한은 “죽으려면 같이 죽어야지
왜 영일이만 내보내느냐”며 지와 다퉜다.
그러다 안과 한은 방으로 들어가 권총으로 자살했습니다.
지강헌은 밖에서 들여온 카세트테이프를 틀었습니다.
비지스의 ‘할러데이’였다고 합니다.
그러곤 유리 조각으로 자해하기 시작했습니다.
이 순간 특공대가 집 안으로 들어가
총을 쏴 지를 쓰러뜨렸다고 합니다.
병원으로 옮겨진 지는 오후 4시 55분쯤 과다
출혈로 숨지고 탈주극은 막을 내렸다고 합니다.
탈주범들은 죄에 비해 형량이 과도하고 보호감호
처분까지 받은 데 대해 불만이 쌓였다고 한다고 합니다.
지는 인질극을 벌이면서 “돈 없고 권력 없이
못 사는 게 이 사회다. 전경환의 형량이 나보다
적다는 게 말이 되느냐”고 말하기도 했습니다.
그는 556만원을 훔친 혐의로 17년형(징역 7년+보호감호 10년)을
받았는데 전경환씨는 수백억원을 횡령하고도 2년 정도만
실형을 살았다고 합니다.
교도소에도 낙서로 많이 쓰여 있다는 ‘유전무죄 무전유죄’라는
말은 지강헌이 기자와 통화하면서 한 말이라고 합니다.
지로부터 자수를 권유받았던 강영일씨는
19년형을 살고 2008년 만기 출소해
봉사와 신앙생활을 하다 한 방송에 출연하기도 했습니다.
끔찍한 현장을 지켜봤던 고씨 가족들은
‘탈주범들이 신고한 것을 알고도 폭언이나 폭행을
하지 않았다고 합니다’며 강씨를 위해 탄원서를
내기도 했으며 사건 후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습니다.
간략히 요약해보면
지강헌 사건은 1988년 10월 8일부터
10월 16일에 걸쳐 일어난 인질극 사건을 말합니다.
당시 지강헌을 비롯해 영등포교도소에 수감됐던 25명
중 12명의 미결수들이 호송 도중 교도관들을 흉기로
위협하고 권총을 빼앗아 집단 탈주한후.
이 중 4명이 서울 서대문구의 한 일반 가정집에 침입,
인질을 두고 경찰과 대치합니다 지강헌은 저격 당했고
나머지 안광술, 한의철은 권총 자살을 했습니다.
이 사건에서는 원래 탈주범 중 한 명인 강영일이
동생 강영태한테 보내는 편지에 `유전무죄 무전유죄`라고
쓴다든지, 지강헌은 인질극이 끝나기 직전
두 명의 권총 자살자의 자살을 밝힌 뒤 자신이 좋아하는 록
그룹의 노래를 트는 등의 해프닝이 일어난 일 입니다.
글은 여기까지 입니다.
행복한 하루 되시고 몸 건강 유의 하시기 바랍니다.
좋은 하루 되세요!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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